유몽인 「풍악에서의 기이한 만남」

2016/07/07 に公開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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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으로 말하기보다 몸으로 실천하다 보니
어느새 도에 이르러 남이 먼저 알아본다

유몽인 「풍악에서의 기이한 만남」

유몽인은 금강산 은거 때 쓴 「건봉사 중 신은에게 주는 서」에서 선문답과도 같은 우언을 통해 자득하여 얻은 진리의 중요성을 논하였다.
내가 금강산에 거처할 때 산중의 작은 암자에서 많은 이승(異僧)들이 솔과 잣을 먹고 오곡을 피하여 수십년 동안 수련하는 것을 보았다. 어떤 승려가 돈오하여 도를 깨쳤다고 일컬어졌다. 내가 그 실상을 알아보니, 대체로 글자도 모르고 불경 하나도 읽지 않았으나, 그와 이야기하여 보니 심지가 툭 트여 있었다. 나는 두려워하기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여서 『이 사람은 성불한 자로구나. 만약 선비였더라면 반드시 높은 관리가 되었을 것이다 』라고 하였다. 『어째서입니까?』 하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.
옛날 이 산 속에 중 셋이 있었는데, 각자 큰 보자기로 옷과 식량을 싸서 길을 갔다. 그러다가 서로 약속하여 말하기를 『우리 세 사람이 수수께끼를 내어, 이긴 사람은 짐을 벗고 진 사람이 지면 어떻겠소?』 하니, 모두 그러자고 하였다.
한 중이 보자기를 놓고 논둑에 누우며 말하였다.
『밤이구나. 난 자야겠소.』
『왜 그렇소?』
『우리나라 말에 농사짓는 논밭이 밤과 음이 같지 않소?』
『그렇구려.』 두 중은 그의 짐을 둘로 나누어지고 갔다. 어떤 곳에 이르러 한 중이 가시덤불 속에 들어가 앉으며 말하였다.
『가사에 매여서 갈 수가 없소.』
『왜 그렇소?』
『우리나라 말에 가시에 얽히는 것을 가사에 매인다고 하지 않소?』
『그렇군.』
한 중이 세 보따리를 합쳐서 지고 가면서 말하였다.
『등에 두 칸 집을 지고 있으니 어찌 괴롭지 않으랴? 』
『왜 그렇소?』
그 중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. 두 중은 이해할 수 없었다. 그래서 세 보따리를 합하여 지고 험한 산을 올라가니, 땀이 흘러 온몸이 젖었다. 길에서 허름한 승복에 누더기를 걸친 노승을 만났다.
『세 사람이 동행하면서 두 사람은 들에 누워 있고 그대 혼자 짐을 지고 가는 건 어째서요?』
그 중이 세 가지 말을 일러 주었다. 노승은 합장하고 절하면서 말하였다.
『그대만이 성불하였도다. 우리나라 말에 집의 보(들보)는 보(보따리)와 음이 같지 않은가? 두 칸 집에는 3개의 보(들보)를 걸치지 않는가? 두 중이 말을 입 밖에 낸 것은 천기를 깨뜨린 사어(死語)다. 그대가 말하지 않은 것은 천기를 온전히 보존한 활어(活語)다. 그대만이 성불하였도다.』

작가_ 유몽인 - 조선 시대 유학자. 저서에 『풍악기우기』 『어우집』 6권 등이 있음

낭독_ 한규남 - 배우. 연극 ‘들소의 달’, ‘강철왕’ 등에 출연.
남도형 - 성우. KBS ‘슬럼독 밀리어네어’ 등에 출연.


배달하며

길에서 만난 노승은 함께 있지 않았음에도
짐을 지지 않은 것만 보고도 두 스님이 말을 발설하고
짐을 떠넘긴 것을 꿰뚫어 알고 있다.
반면에 혼자 다른 두 스님의 짐까지 짊어지고 있는
스님에게는 ‘어찌된 일이냐’고 묻고 있다.
세 번째 스님은 그제서야 입을 열어 답변을 한다.
그 말은 이제껏 지고 있던 세 사람의 짐을 모두
벗을 수 있는 그런 답변이었다. 그가 동행에게
말을 발설하지 않은 것은, 말함으로써,
무거운 짐이 다른 이에게 넘겨질 것이므로
자신이 그냥 지고 가려 했기 때문이다.
결국, 무거운 짐을 감당하는 마음이 곧 성불(成佛)의 힘이었다.



문학집배원 서영은


출전_『조선의 선비, 산길을 가다』(이가서)
음악_ Backtraxx /nature중에서
애니메이션_ 송승리
프로듀서_ 김태형